산정상에 석상이 자리잡고 있는 '세계8대' 불가사의 렘루트 콤마게트왕국의 신전이 있는 곳. 태양과 달 그리고 물을 제일 신성시 하였는데 그래서 콤마게네인들은 하늘에서 제일 가까운 곳 즉 산 꼭대기 위에다 안티오코스 1세와 제우스와 헤라클라스등 신전을 만들었다. 바람둥이 제우스와 나란히 석상을 둔 것을 보면 그 자신을 신격화 시킨 사람 같다

원래 이 다리는 길이 120M로 처음부터 끝까지 네개의 기둥의 10M 높이의 아치가 있다 이것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와 그의 아내 줄리아 돔냐, 그리고 그의 두아들 게타와 카라칼라 의 상징이기도 하다게다가 카라칼라에게 암살된 뒤 4번째 기둥이 제거되어서 오늘날 3개의 기둥만이 서 있다.

길이란 뜻의 하란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가기 전 쉬었던 곳. 원추형모양의 찰흙으로 지어진 흙 집을 보고 있노라면 창세기시대로 돌아간 착각이 든다. 아마 이 곳이 아브라함 가족이 갈대아우르를 떠나 이 곳에서 머물렀기 때문에 성서랑 관련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고대엔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였고 아시리아 시대엔 달의 신에게 제사의식이 많이 행해졌던 곳이다

산울파는 예언자들의 고향이란 별명을 가졌는데 배경은 이러하다
아브람의 연못은 아브라함이 이교도 말을 잘 안 들어서 장작불로 태워 죽 일려고 하자 하나님이 그것을 호수로 그리고 숯 더미는 잉어로 만들었다고 믿어서 여기 잉어는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 여기 잉어는 잡아 먹지 않는다

욥이 병에 걸려 있었을 때 먹고 나았다는 우물이 이 곳의 명소이다
욥은 그 시대의 거부였는데 어느날 그 많은 재산도 가족들 그리고 욥의 건강까지도 가져갔다. 병든 그는 어느날 우물에서 목욕하자마자 즉시 상처들이 낫고 그리고 그의 고통을 잊어버리 게 되었다고 한다 비잔틴시대이후 이 우물이 문둥병자와 피부병 치료에 효능이 있어서 이 곳에 병원과 목욕탕을 세우기도 했다

7가지색으로 바뀐다는 아름다운 호수 반은 고도 1646에 넓이 3713킬로의 터키 최대의 호수이다. 이 곳은 옛날부터 거대생물인 반 자나바르가 서식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으며 그것을 목격한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 괴물이 물고기를 다 잡아버리는 바람에 반호수엔 잔챙이 몇 마리를 빼곤 물고기가 없다고 하기도 하고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상을 쫒겨 날 때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소다수로 변해 어류가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옛날 교회의 주교에게 타마르라고 하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그 딸은 마을의 한 청년과 사랑에 빠졌다.그것은 알게된 주교는 타마르를 섬으로 옮겨가게 한다 타마르를 사랑하는 총각은 타마르가 비쳐주는 촛불을 향해서 섬으로 헤엄쳐가서 그녀를 만나곤 했다 . 이것을 눈치챈 주교는 어느날 밤 촛불을 들고 나와서 청년에게 신호를 보낸다 자기의 연인의 신호인줄 안 청년은 수영을 해서 섬으로 간다 그러나 신호가 되는 불빛은 이리저리로 방향을 바꾼다 그만 힘이 빠진 청년은 “아! 타마르!”라는 말을 남기고 물에 빠져죽는다 .
아침에 이 사실을 안 타마르는 청년을 따라 물 속에 몸을 던진다 이말에서 악다마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호삽성은 사막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으며 마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성처럼 보인다.
호삽 성은 터키에 있는 쿠르드족의 성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쿠르드의 군주에 의해 오토만제국의 힘이 쇠퇴하던 1643년에 세워졌으며, 반에서 48km 떨어진 하카리도로에 있다.




아폴론의 달 착륙으로 인해 노아의 방주와 에덴동산이 있었던 곳으로 알려졌다. 터키와 이란 사이의 국경에 솟아올라 있는 아라라트 산은 높이 5,137m로 터키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성서에 따르면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 후에 이 산에서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등반은 7~9월 사이가 가장 좋은 시기이다 하지만 가이드 없이 혼자 올라가는 것은 삼가 하는 것이 좋다.

1800년 오스만 제국시 이삭파샤 2세는 한 건축가에게 명하여 이 궁전을 짓게 하였고 궁전이 완성 된 후 이삭파샤는 그의 두 팔을 잘라버렸다고 한다 이유는 이와 같은 아름다운 궁전을 다시는 세우지 못하게 하기위해서였다. 궁전은 산꼭대기위에 있는데 암반에 기반을 두고 있다. 18세기 오토만 건축양식이 많이 두드러지고 예술,역사적으로 상당히 가치가 있기도 하다. 366개의 방들은 모두 돌로 만든 아궁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온방시설을 갖추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마르딘은 티그리강을 끼고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누렸던 수리안인이라는 기독교인들이 살았다. 마르딘에는 초대 기독교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수리안들의 정교회 교회와 수도원을 많이 볼 수 있다. 지금도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아랍어와 수리안어로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아르메니아 고원에 자리잡고 있으며, 유프라테스강과 아라스강의 수원에 가깝다. 아르메니아로 통하는 종관철도(縱貫鐵道)가 지나가며, 흑해 연안의 트라브존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부근 일대에서 풍부하게 산출되는 밀?보리?사탕무 등의 농산물을 집산한다.또 제당공장이 있으며, 석탄?갈탄 등의 광물자원도 산출된다. 비잔틴 시대의 테오도시오폴리스가 이곳이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아르메니아 지방의 전략적 요지이며, 현재도 터키 동방 방위의 거점이다. 1957년 창립된 아타튀르크대학이 있다.

 
 
터키의 동북 국경인 카르스는 비극적인 역사를 가진 곳이다. 한때 러시아에 속하기도 했고 그 때문에 강제 이주를 당했었다. 판도가 불리하게 흘러가는 1차세계대전 중 터키는 러시아아
대치한 상황에서 카르스의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편에 붙지 않을까 우려했기에 일어난 비극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은 터키정부가 강제 이주 중에 목숨을 잃은 아르메니아인에게 사과하고 보상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고국에서 냉대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