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룸성은 보드룸의 특출한 건출물로 15세기 십자군에 의해 건설되었다.
그리스의 로도스섬에 상주하면서 보드룸을 침공한 십자군들이 1402년 마우소루스의 묘 에서 쓸만한 석재를 모두 가져와 성을 쌓았다. 그리고 기독교도들이 십자군 시대 동안 기독교사회를 이루며 살았다. 1523년 터키의 통치하에 들어가면서 이곳은 군사방어요새, 감옥그리고 공공목용탕등 여러용도로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수중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 갈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에베소에 와서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 들과 변론하니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지아니하고 작별하여 가로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사도행전 18장 18절 - 21 절)

셀수스 도서관은 AD110~135년 사이, 당시 이 지역의 로마 총독이던 율리우스 아킬라 (Julius Aquila) 에 의해 소 아시아 지역의 전임 통치자였던 그의 아버지, 율리우스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를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 이 도서관은 세계 3대 도서관 중 하나로 12,000 여권의 두루말이 장서를 보관 중 이였다.
4곳의 조각상은 지혜,지식,지능 및 덕망을 의미한다고 한다. 복제품이며 진품은 비엔나 박물관에 있다

산의 경사로에 세워진 이 극장은 무대 바닥에서 갤러리 맨 꼭대기까지 높이가 60미터로 에게해 에서 가장 큰 극장이다 대부분 부조들은 오래전 지진으로 인해 도시가 파괴되면서 사라지고 없다. 24000멍 수용이 가능하고 클라우디우스통치시대에 시작되어 트라얀황제 때 끝난 대대적인 보수공사로 인해 관중석은 원형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무대의 1층과 2층 건물은 네로황제에 만들어졌고 3층은 셉티무스황제때 만들어졌다

왜 하필이면 도서관 앞에 자리잡았는지 얄꿎기도 하다. 옛날 창녀는 정치에도 참가할 정도로 권리와 지식을 갖추었다고 한다. 원래 서당개 삼 년이면 경 읊는다고 하는 우리나라 옛 속담처럼.... 바닥에 그려진 광고의 내용은 거시기를 원하시는 분은 발바닥이 표시하는 방향으로 오세요. 여긴 카드는 안되고 오직 현금만 가능합니다. 그러면 쭉쭉빵빵 여자들이 거시기한 기쁨을 드립니다. 단 이 발자국보다 거시기가 작은 사람은 오지 마세요.
이건 쟈스민식의 해석..믿거나 말거나
중앙에 4각형의 풀장이 있고 그 둘레에 대리석의 변기와 작은 수로가 있다 비대시설과 이상한 소리 들릴까봐 분수시설과 음악까지 갖추었다변소에서 쓰는 물은 바로 옆에 있는 목욕탕에서 흘러나온 물을 재활용 썼다고 하니 옛사람의 지혜로움이 보인다.
지붕은 덮여 있지 않고 변기를 가리는 칸막이가 설치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보이는 이 화장실은 남자용으로 쓰였다고 볼 수 있다

그 곳은 바로 의사이면서 복음전도자였던 누가의 묘 여기에 있는 누가의 무덤은 처음부터 그의 무덤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었다 의료의 신 아스클레우스의 신전으로 사용되어진 곳을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는 의사였던 누가였으므로 아스클레우스신전에서 누가의 무덤으로 사용한 것 같다그의 유해는 뿔뿔이 흩어졌는데 머리는 로마의 성베드로 교회에 그리고 몸은 파도바의 성가우시타나 교회에 보관중이다

1878년 캐더린(catherine)이라고 하는 독일 수녀가 꿈속에서 계시를 받은 내용을 '성모 마리아의 생애' 라는 제목으로 펴냈는데 이 책 속에 마리아의 집 위치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 수녀는 자기가 태어난 고장을 한번도 떠난 일이 없었으므로 1891년 나사렛의 신부가 탐사반을 조직하여 오늘날의 성모 마리아의 집을 발견하게 되는데, 집터 모양은 캐더린이 계시받아 기록한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 하였다. 1961년 교황 요한 23세는 마리아의 집의 위치에 대한 논쟁을 종식 시키고, 이곳을 성지로 공식 선포 했다

<지저스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뮤지컬을 보면 I don’t know how to love 란 노래를 막달리아 마리아가 부르는데 눈물이 핑 돈다. 내가 최고 좋아하는 노래이다. 그 때 마리아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예수님을 사랑했으니 존경과 사랑 그리고 숭배 등등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그에게 향했던 탓에..
예수님 저도 정말 정말 사랑해요
기독교 박해가 있었던 때에 일곱 명의 사도가 숨어서 기도하다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서 배가 고파 빵 사러 갔는데 시장에 나가서 사도들은 자기들이 200년 동안 잠을 자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미 그때는 기독교가 국교가 되었던 때였던 것이다.
이것 또한 믿거나 말거나

세기경 기독교가 공인되고, 에베소에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자 그의 무덤이 있던 자리에 목재로 된 교회가 건립 되었다. 그 후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안 황제 (527-565)가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의 교회로 증축하였다. 교회의 심장부인 본당은 십자가 모양으로 되어 있고 이곳에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다. 1966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을 방문하고 공식 성지로 선포 하였다









터키 쿠사다시 항구 ( Turkey Kusadasi)는 해변가 의 그림같은 도시로 기원전 11세기에 이오니아인에 의해 세워진 도시이다. 쿠사다시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에는 매우 뜨거우며, 겨울에는 온화한 기후로 어느 시기에나 여행하기에 적당하다. 평화로운 에게해에 펼쳐져 있는 새하얀 황금빛 해변, 터키어로 쿠사다시란 '새들의 섬'이란 뜻이다
아르테미스 여신
유방이 24개 달린 다신과 풍요 그리고 사냥의 여신이다.그리고 아폴론의 누이이다. 옛날엔 5월의 여신의 축제때는 소의 거시기를 24개를 잘라 여신에게 바치는 축제를 열었다. 왜 하필이면 거시기인지, 얄궂은처녀여신이다. 나도 여신이었다면 이뇬 보다 더 했을 것이다.

칠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신전.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무조건 두 배로 크게 지었다고 한다. 지진으로 127개의 기둥은 이리저리로 헤어져서 단 한 개만 쓸쓸하게 홀로 남아 화려했을 옛 기억을 돌아보게 한다.

전설로 여겼던 트로이가 초보가 고고학자의 엄청난 집착에 의해 트로이가 상상의 도시 에서 현실로 세상에 모습을 드려나게 된다. 3년에 걸친 발굴로 인해 슐리만은 엄청난 양의 유물과 보물상자를 발견하는데 이 상자에는 16000여개의 금붙이로 만든 왕관까지 있었다. 이 유물들은 슐리만이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독일로 가져와 그의 사후에 박물관에 기증하나 1945년 독일로 진주한 소련이 탈취하여 지금은 러시아에 있다.
디딤의 아폴로 신전은 BC 6세기경에 지어졌다. 그 후 마케도니아의 왕이 신탁을 받으러 이곳을 찾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왕도 신전 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오직 고위 사제만이 신전 안으로 들어가 하늘의 계시를 들을 수 있고, 그 내용을 밖에 있는 왕에게 전했다.
또 4년에 한번씩 이곳에서 지금의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경기가 열렸다고 한다.
이오니아인들이 살던 주요도시주의 하나이며 다른 식민지들과 같이 무역소득으로 부유한 생활을 했다. AD2세기에 세워진 원형극장은 1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뛰어난 건축물 이다. 아고라 기념과,시청,체육관,항구기념비와 게이트,텔피온등 다른 유적지들도 많다. 도시 계획자 히포다모스가 설계했는데 바다의 침니현상으로 인해 교통 및 수송문제와 말라리아 전염병으로 인해 12세기 후 반에 폐허가 되었다. 비잔틴교회를 지나면 이오니아양식으로 지어진 아테네신전도 있고 도리아양식으로 지어진 제우스신전도 있다
'케르반(Kervan)'하면 낙타를 이용한 대상을 뜻하며, '사라이(Saray)'는 궁정, 숙소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케르반사라이는 대상들의 숙소를 말하는데, 옛날에 실크로드의 종착역은 콘스탄티노플이었고, 터키의 실크로드도 바로 카파도키아 지역을 통과하였다. 이 건물은 1231~1237년 사이에 셀주크 터키인들에 의해 건설된 것인데, 정문의 돌세공 기술이 특히 눈길을 끈다